제1909호   2020.09.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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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작성자 신종현(헬레나)
작성일시 2010-10-26 05:35:52

20년 전 내가 세례를 받을 당시의 교리교사는 ‘하느님 아버지는 사랑이시며 한없이 자비로우신 분’이시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제껏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아버지는 엄하고 무서우시며 속으로는 자식을 사랑하시지만 겉보기에는 사랑과 거리가 멀어서 대하기조차 어려운 분이셨다. 부친의 말씀은 곧 법이었고 때때로 그 말씀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지없이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종손의 장남이셨던 부친은 매사에 빈틈이 없으셨고 근면 성실하셨으며 책임감과 절약 정신으로 40년 전인 1970년의 어려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학업의 기회를 주시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 앞에서 응석이라고는 단 한번도 부려 본 적이 없는 딸로서 나 역시 자상하고 부드러운 성격이 되지 못한 채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난 후에는 친정에 갈 때 마다 부지런히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뿌렸지만 불교인이셨던 아버지께 하느님 말씀이 끼어들 틈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아버지 연배의 어르신이 성전에 앉아서 미사 드리시는 것을 볼 때면 ‘우리친정 부모님은 언제 세례를 받으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부럽기만 했다.
그런데 5년 전의 일이다. 편찮으시던 부친께서 병원에 입원하시어, 다음날 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그때 나는 혹시 잘못 될 경우를 생각해서 ‘아버지께서 대세라도 받으셔야 한다!’라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내일이면 대 수술을 하실 분 앞에서 뭐라 드릴 말씀도 없고 어떤 위로의 말씀도 생각나지 않았기에, 마음속의 가득한 말 대신에
“아버지, 자식들 모두 용서해 주시고 마음 편하게 생각 하세요.”
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버지는 “그래, 고맙다. 인명은 재천이다.”
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돌아오면서 ‘인명은 재천’ 그 말씀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계속 메아리쳤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곧 주님을 믿고 계신다는 것이고, 대세를 받으시도록 도와 드리자는 생각에, 다시 눈에 뜨이는 성수통을 들고 세례명은 순간 떠오르는 ‘베드로’로 정한 후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진료시간이 끝난 병원 대기실은 고요와 적막뿐이었고 그곳에 아버지가 계셨다. 나는 아버지 곁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인명은 제천이다.’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하느님이 계신다고 아버지도 인정하시는 것이지요?”
아버지께서는 나를 바라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시간이 없으니 우선 대세를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린 후에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드렸다.
“베드로! 나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그때 주관 하신 분은 예수님이셨고, 아버지와 나는 그냥 손을 맞잡고 한동안 울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후에 가정 방문 교리를 통해 신부님께서 세례를 주셨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의 세례명인 베드로의 축일이 우연히 아버지의 생일과 맞았다. 그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완벽하고, 주님은 우리가 모를 뿐이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생겼다. 아버지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돌아 가셨지만 그 후에 친정어머니께서도 세례를 받으셨고, 요즘은 매일 미사참례를 하시며, 시간이 나는 대로 성지를 다니신다. 어머니께서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기도드리며 테살로니카전서 5장 18절을 묵상하였다.
주님, 제가 언제나 깨어있는 주님의 자녀가 되게 도와주소서.